석유 시리즈 3편 - 석유 시장의 핵심변수
September 02, 2020
“30만 달러를 벌었어”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의 창업 초기를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들이다. 페이스북의 초기 CFO이자 추후에 마크 저커버그와 갈등을 겪는 에두아르도 세버린은 영화 초반 “날씨를 예측하면 기름값도 예측할 수 있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소한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가 사실을 최대한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사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날씨는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간단하게 석유 시장의 핵심 변수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석유와 제품의 가격
석유 시장의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누가 뭐래도 ‘유가’이다. 수요와 공급의 상황을 반영하여 도출되는 유가의 중요성은 뭐…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석유라고 해서 다 같은 석유는 아니다. 석유는 기본적으로 실물 재화이기 때문에 장소(생산국) / 시간(생산월) / 화학적 구성요소(생산물) 등 핵심적인 변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벤치마크(기준) 석유인 WTI에서 +/-가 되어 가격이 매겨진다. 또한, 각 생산월마다 다른 ‘월물’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8/31에 생산되는 석유와 9/1에 생산되는 석유는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겠지만 선물 시장에서는 가격 차이가 크게 나기도 한다.
또, 석유는 정제된 이후 다양한 최종 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각 국가별로, 또 월별로 생산되는 석유 최종 생산 제품의 가지 수는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같은 휘발유라도 옥탄가(휘발유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치)에 따라 92 RON, 95 RON, 98 RON으로 나뉘어지며, (RON 값이 높을수록 엔진의 노킹현상 - 연료의 연소를 제어할 수 없는 현상 - 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다.) 디젤의 경우에도 황 농도에 따라 10ppm, 500ppm 등으로 나뉘어 거래된다.
석유와 그 제품의 종류가 많지만, 핵심적인 기준 항목들을 설정해서 +/- 하는 형식으로 각 항목들의 값이 매겨진다. 게다가 석유 업계는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인도의 공장에 불이나서 납사의 수요가 줄면 아시아 납사 가격 전체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항상 수요와 공급의 추이를 지켜보고 핵심 플레이어들의 수급 상황이 업계 전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산유국간의 협력
석유는 기본적으로 공급자 중심적인 자원이다. 어떤 나라는 석유가 엄청 많이 나서 넘칠 정도지만, 어떤 나라는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석유는 전 세계 에너지원의 34%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급 차질이 생길 시 경제와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력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의 전략비축유와 같이 비상 상황에서 일정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석유의 저장을 법으로 저장해놓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자원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세계 무대에서 산유국들에게 많은 권력을 가져다준다.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소위 OPEC이라고 불리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산유국 연합은 석유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북미의 캐나다와 미국, 동유럽의 러시아와 아시아의 중국도 많은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2014년부터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추출되기 시작하면서 석유 시장의 변동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는데, 최근 발생했던 유가 대폭락 이슈도 산유국들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이번 이슈는 러시아와 중동이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산유량 감축에 일부러 응하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있다. 현재 미국의 많은 셰일가스 업체들이 파산/생산중단을 한 상태이기도 하며, 유가 전쟁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석유는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 정부들이 화석 연료의 탄소 배출이 환경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더 효율적인 엔진들만을 시장에 공급하도록 규제하거나 혹은 화석 연료 전체를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민간에서도 테슬라로 대표되는 전기차 전환 가능성이나 공유 경제를 활용한 이동 효율 최적화를 통해 석유 수요를 위협하고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장기적으로는 석유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완전히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판단에 맞추어 기존 석유 기업들도 친환경 에너지 산업 / 석유 화학 산업 / 전기 배터리 산업 등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의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는 애플에게 전 세계 시가 총액 1위 자리를 내주면서 변화의 바람을 몸소 체감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우디 내에서도 탈 석유 사회에 대처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사우디의 국부펀드는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가 만든 비전 펀드(기술 투자 중심의 벤처 캐피탈)의 핵심 LP이기도 하다. 최근 소프트뱅크와 사우디 국부펀드의 관계에는 많은 마찰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사우디 내에서도 핵심 산업이었던 석유 산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Global Oil Major 중 하나인 영국의 BP는 최근 탄소배출 제로,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 등을 제시하며 다양한 투자 / 생산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또 다른 Oil Major이자 과거에 6년 이상 미국 시가 총액 1위를 지켰던 엑손모빌은 IT 회사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최근 다우지수에서 퇴출당했다.
이처럼 석유 시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요의 위기와 공급의 변동성을 겪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석유시장의 변동성이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변수들
유가, 산유국, 수요 및 공급 외에도 서론에서 나왔던 날씨, 각 국의 경제 동향, 달러(석유는 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의 약/강세 등도 석유 시장의 핵심 변수들이다. 많은 재화들이 그러하겠지만 석유만큼 중요하고, 다양한 환경 변수들에 영향을 받는 재화는 달러, 유로, 위안, 금 정도일 것이다. 언급된 재화들을 ‘자원’으로 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석유는 현재 실물 자원의 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로 에너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석유가 본격적으로 석탄을 추월하며 인류의 중요자원이 되었던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어찌보면 50년은 짧은 기간 동안 왕좌를 차지했던 석유의 미래는 현재의 석유 시장처럼 크게 요동치고 있다.
+나의 성장
나의 일과 관련된 인류의 역사는 파고들면 들수록 재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오일시리즈를 적어가면서 지속적으로 짬을 내어 공부하고 조금씩 더 알아가는게 나름 뿌듯하다. 다만 이러한 잡지식의 증가가 나의 성장에 직접적인 연료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잡지식의 단순 축적보다는 산업 단위의 인사이트를 추출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잘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깨달음이 오면 글로 더 잘 풀어내고 싶다. 오늘의 오일시리즈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