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시리즈 8편 - 내 맘대로 보는 석유의 역사 (5)
June 30, 2021
(이전 글과 이어집니다.)
OPEC and Oil as a Weapon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을 확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일정 기간 이상 사용이 가능한 원유의 비축을 법으로 성문화 해두었다. 석유는 지금도 중요하지만 달리 대체할 효율적 에너지원이 없었던 예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석유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명명백백히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자원으로 부상한다.
물자의 이동과 교통의 원천, 산업의 피라고 불리는 석유의 중요성은 전쟁과 산업 발전에 사활을 걸었던 당시 국가들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적 시야에서 석유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중동의 권력은 지속적으로 강화된다.
석유 산업의 발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 ‘이전까지는’ 중동의 자원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Refinery Run Rate(정제 공장 가동률)가 100%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자원과 추가 생산력이 있는 경우에는 아랍이 석유를 무기화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동의 석유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간다.
1960년에는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줄여서 OPEC이라고 하는 석유수출국 간의 국제적 협의체가 생겨난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원유가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중심축이다. OPEC은 석유수출국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회원국들간의 합의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한다.
OPEC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가 결성하였으며, 현재 총 13개국이 OPEC에 참여 중이다. 현대에는 미국과 러시아, 멕시코 등의 국가들이 석유수출국으로 성장하여 OPEC이 갖는 카르텔로서의 효과는 조금 떨어져있다. (보통 요새 OPEC과 러시아가 모여서 석유 관련 회의하면 OPEC+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거에는 OPEC이 무소불위의 석유 권력을 휘둘렀다.
OPEC과 같이 산유국들이 자신의 힘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중동은 석유를 정치/경제에서의 상당한 교섭권을 갖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1970년 리비아의 카다피는 미국 석유 회사인 Occidental Petroleum을 위협하여 기존의 (서구 기업) 5 : (아랍 국가) 5 라는 분배원칙을 최초로 깬다. OPEC의 설립 이후 석유 산업의 주도권은 중동이 가져가게 된다.
오일쇼크
오일쇼크는 중동의 석유가 무기화 되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이전 글에서 간단히 언급했었던 몇 번의 중동 전쟁 중 마지막, 즉 4차 중동 전쟁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도 한다. 이 전쟁은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사다트로 인해 시작된다. 그는 6일 만에 치욕을 맛봤던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라고도 한다.)의 패배를 갚기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며 전략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사다트는 자국 군사력을 강화하고, 아랍 국가들 사이의 단결을 도모했다. 그러면서도 서구 열강에게 밉지 않은 상태를 항상 유지했다. 복수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에게는 ‘공갈 협박’ 전략을 사용했는데, 몇 개월 마다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도발을 하며 이스라엘이 사다트를 허풍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 이후 1973년 10월 6일 유대교 전통의 속죄일(욤 키푸르), 이집트는 이스라엘 침공을 개시한다. 이전처럼 이집트는 이스라엘 군에게 쉽게 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선제공격이었으니 오히려 이스라엘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온다. 물론 이스라엘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비호를 입고 있었으니 양 쪽은 밀고 밀리는 상황을 가져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랍 국가들은 서구 열강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 수출을 금지한다. 이것이 1차 오일쇼크이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석유부 장관이자 Aramco를 세우고 OPEC 결성을 주도한 아흐메드 야마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똑똑했다. 4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며 굳이 수출을 금할 필요까지도 없고, 월에 5% 씩만 감산을 해도 전 세계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석유 수출 제한 조치가 취해지자 석유의 가격은 단숨에 거의 5배가 올라버리게 된다.
이러한 아랍 국가들의 제한적 석유 수출은 미국과 영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고 흔히 말하는 Stagflation을 가져오게 된다. 주요 원자재인 석유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경기는 침체되어 있는데 물가는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당시 우리나라도 아랍의 석유 무기화를 인정하며 친아랍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산유국들이 갖는 국제 경제에서의 지위가 아주 크게 높아지게 된 것이다.
또한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란에 이슬람주의와 반 서구 정서에 입각한 공화국 정부가 수립된다. 이란의 이런 불안한 정세를 틈타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이와 같이 불안한 아랍 국가들 사이의 정세는 원유 공급에 차질을 일으킨다. 또 국제적인 경기 침체 및 물가 상승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이 2차 오일쇼크이다.
석유 패권 전쟁
이 두 차례의 원유 파동을 겪으며 전 세계는 석유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특히 미국은 석유라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1차 석유 파동 직후인 1974년에 사우디와 체결한 경제 협력이다. 그 협력의 내용은 ‘미국은 사우디의 정유시설을 보호하고 군사력을 지원’하며, ‘사우디는 모든 원유 수출입 계약에서 결제 통화를 달러로만 국한’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사우디 원유는 이 때부터 달러로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우디는 OPEC의 머리이고 석유 수출국들의 표준이었으니 다른 나라들도 자연스레 이러한 표준에 맞추게 되었다다. 이와 같은 조치는 차후 석유 패권 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토록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또 1980년대에는 뉴욕상품거래소(NYMEX)와 런던국제상품거래소(ICE London)에 원유 선물 시장이 생기게 된다. 석유는 금융자산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선물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산유국들이 가지고 있던 원유에 대한 가격결정력이 점차 서방의 국가들에게도 넘어오게 된다.
이렇듯 석유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경제, 국방, 외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원의 안정적 수급을 도모하는 미국과는 달리 중동의 OPEC 국가들은 분열을 지속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그들끼리의 점유율을 가지고 싸운다. 사실 그들에게는 점유율이 매우 핵심적인 요소였는데, 그 이유는 점유율이 국가와 국민의 부에 직결되어 있었으며, 점유율은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91년 아주 갑작스럽게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해버린다. 현대에서 걸프전의 개전 원인으로는 석유, 영토, 해안선, 자국 내 불만 해소 등 많은 이유들이 거론되지만, 사실 핵심은 OPEC의 핵심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중동 핵심 국가 간의 분열이라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친미 국가인 쿠웨이트를 지원하며 전쟁에 깊숙하게 개입한다. 미국 대통령 George H. W. Bush(아빠 부시)는 “만약 이 거대한 석유 매장지의 통제권이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우리 일자리와 삶의 방식,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우리와 우호적인 국가의 자유는 모두 위협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쟁을 시작한다. 이것이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이다.
걸프전은 미국의 군사력 경연장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유명한 ‘사막의 폭풍’ 작전이 실행되었던 전쟁이기도 하다.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미사일, 아파치 헬기를 동원한 미국의 군사력은 막강했고 이라크는 진짜 탈탈 털리게 된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는 ‘미국과 전면전을 붙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각인시켜주는 것이었다. 또한 같은 해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지구 최고의 강대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Pax Americana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역사가인 노엄 촘스키는 ‘중동에 석유가 없었다면 미국은 중동에 대해 남극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렇듯 석유를 사이에 둔 중동과의 힘겨루기에 있어 자국의 이득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또 그 이득에 반하는 모든 세력과 사건을 견제해왔다. 중동과의 싸움에서 미국의 최대 화두는 ‘안정적 석유 수급 확보’에 있었으며 다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아주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중동의 자원을 잠식했다. 사우디의 국부펀드로 하여금 미국의 국채를 많이 갖고 있게 하고 사우디를 경제/군사/외교적으로 후하게 지원하며 OPEC의 물량조정자를 우방으로 만들어 두었다. 사우디는 결국 달러 기반의 석유 패권을 수호하는 국가가 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2014년, 미국 텍사스의 석유 중소기업 회장인 조지 미쳴은 몇십 년 간의 연구 끝에 수압파쇄법을 통해 셰일오일을 얻는 법을 시장에 선보인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은 2배 이상으로 끌어올려졌고, 202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급증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미국이 ‘더 이상 중동의 평화 경찰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하기도 한다.
나의 사견이지만, 솔직히 현재 시점에서 석유 패권 전쟁은 미국이 중동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쉽게 이기고 있다. 적어도 석유와 에너지 측면에서 미국은 전 세계의 최강국이다. 석유의 역사를 통해 미국을 보면 미국은 현명한 예언가인 동시에 약삭빠른 장사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Outro
바로 작년이었던 2020년, 미국의 트럼프와 OPEC+ 간의 경쟁적 원유 증산과 유가 폭락 사태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사우디의 왕세자 빈살만과 러시아의 푸틴이 감산 교섭 결렬로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원유가가 폭락한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원유가를 낮춰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의 셰일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한 OPEC+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아직도 석유 패권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왜냐? 석유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원천이니까. 지금 2021년에도 바이든의 ESG 정책, 탈석유 에너지 정책 등을 보면 석유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동, 자원 강국들의 에너지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중요해질 석유에 대해 미리 파악했고, 석유의 핵심적 인프라를 강하게 점유했고, 그 인프라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통해 시대의 아젠다인 석유와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해왔다. 앞으로 이 세계 석유 패권 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까. 전기차, 친환경과 신재생 에너지가 도래하는 지금 이 시기에 석유 패권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될까.
지난 4월 29일, (석유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연설은 아니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It’s never ever, 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 and it still isn’t.”
과연 앞으로의 세계 에너지 시장도 미국이 주도할 수 있을까. 과연 앞으로도 Bet against America는 나쁜 선택이 될까. 중동과 베네수엘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과 어떻게 경쟁하게 될까. 나는 거대한 공룡들의 흥미진진한 이 싸움을 앞으로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내 맘대로 보는 석유의 역사 시리즈 끝)